''운영아 뭐해? 음 오늘 할 일 없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애들이랑 같이 놀게 빨리 나와!!'' 하이톤의 흥분된 목소리가 계속 메아리치며 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다. 나는 그곳을 탈출하고 싶다. 그들이 없는 세상 속에서 새로 출발하고 싶다. 기차에 앉아 있는 승객처럼 쇳덩이 속에 몸을 맡긴 채 어딘가를 향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기차는 바퀴를 쉼 없이 굴려가며 끊임없이 서쪽으로 향하고 있지만 난 과거에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 어 운영이 또 멍 때리고 있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말은 듣고 있는 거야?'' 다소 앙칼진 목소리가 내 귀를 후벼 파고 있다. "
그러니깐 내가 오늘 공짜로 이렇게나 많이 경품을 챙겨 왔어!! 어디 보자 이건 김세트고, 이건 고무장갑이고 어디 가서 이런 것들을 챙겨 오겠어? 완전 개이득 음 이따 오후에 강변에서 유명가수들이 와서 공연하러 온데 빨리 보러 가야지"
안경을 낀 동굴동굴 한 얼굴과 소년 같은 인상을 했지만 다소 까무잡잡한 피부톤과 군데군데 보이는 주름은 나이의 흔적을 숨길 순 없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 표정 뒤편에는 한없이 깊은 어둠을 간직했고, 그 어둠이 항상 주변 사람들을 어둡게 만드는 어른 아이......
K는 그어둠을 상대방과 공유함으로써 그 천진난만함을 보상으로 삼는 친구였다. " 내가 내일 일이 좀 바빠서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가 봐야 돼"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k에겐 말이 통하질 않는다. "음 운영이~ 나 덕분에 일도 구하고 같이 꿀도 빨았잖아 이러면 담엔 좀 힘들어질 수 있어!! 같이 가자"
결국 나는 이기지 못할 싸움에 패배하고 k의 봉고차에 오르며 강변으로 향했다. " 아 k형님 안녕하세요?" "윤식이도 왔어?" "헤헤 저야 형님 가는 데는 어디든 같이 가죠" "철수는? 같이 안 왔어? 모두들 함께해야 재밌는데! " " 아 철수는 미리 강변 가서 자리 맡아놓으라고 했어요 헤헤 앞에 앉아야지 가수들도 잘 보이고 경품 타야지 않습니까? 헤헤 " 우리보다 나이가 약간 어린 윤식이는 다소 어리숙하지만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강변에는 벌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에는 하나같이 종이로 만든 캡 모자를 쓰고 멋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차림새로 삼삼오오 수다를 떠는 모습이 마치 교장선생님의 담화를 기다리는 아이들 같았다고 할까나...
" 어 형님들 오셨어요? 왜 이렇게 늦은 거예요 여기 자리 맡아놓느라 혼났다니깐요!'' 교복을 채 벗지도 않은 차림으로 10살 차이도 더 나는 우리들에게 싹싹한 몸짓으로 한 소년이 달려 나왔다. "헤헤 철수구나 수고했어 k형 이 자리 어때요? 헤헤" " 음 난 좀 더 가운데 쪽이 잘 보이고 눈에 띄어서 더 좋긴 한데 만족해 오 철수 대단한걸? 이따 경품 많이 받으면 하나 줄게" "에이 형님들 경품은 괜찮고요 이따 밥이나 사주세요"
철수는 어린 나이이지만 계산이나 행동이 빨라서 때로는 의도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K는 자기의 리더십 때문에 사람들이 따른다고 자화자찬을 하지만 대가가 그를 따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공연을 알리는 시간이 되자 교장선생님의 담화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일제히 단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포마드를 하고 슈트를 말끔하게 차린 사내가 오른쪽 입꼬리를 슬쩍 들썩하면서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학생들을 조련하기 시작했다.
'' 자아 여러분 이제 곧 공연이 시작될 거니까 집중 좀 해주시고요~~ 여기 받은 번호표 있죠 이게 경품 번 호니 깐 잃어버리지 마세요 중간중간에 추첨도 할 거고 마칠 때까지 추첨은 계속되니까 중간에 나가시지 말고 계속 앉아 계세요"사회자는 늘 했던 말을 반복적으로 한마디도 다르지 않게 하고, 우리를 비롯한 관객들은 경품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나오자마자 그 순간만큼은 입시설명회를 듣는 학부모처럼 눈을 봉긋 뜨고 앉아있었다.
사회자의 눈은 아주 기분이 좋게 웃고 있었지만 유난히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게 거슬려 보였다. " 헤헤 k형님 아까 추첨권 많이 들고 가는 거 봤는데 헤헤" " 이게 다 능력이야 어디 가서 공짜로 이런 공연도 보고 상품도 엄청 타 오겠어? 이런 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기 아니겠어? ''
나는 약간 부아가 치밀어서 조금 짜증이 났지만 k가 정해준 방식 외엔 딱히 생각이 나질 않았고, 일단은 시간을 때워보자는 반 포기의 상태로 그들의 행태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