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처음의 설렘은 다들 있겠지요. 특히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 마주했던 도시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저한테는 난징이 바로 그렇습니다. 지금은 강남의 지존 도시의 자리를 상하이에게 내주었지만, 수천 년 역사 동안 쌓였던 무게는 상하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습니다. 삼국지에서도 난징은 손권이 다스리던 오나라의 수도로 큰 역할을 했었죠. 그 난징에 대한 소개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지도에서 보면 상하이 바로 옆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300킬로 정도 떨어져있습니다. 서울에서 대구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죠. 난징이란 뜻은 남쪽의 수도라는 것으로 북경과 대비되는 명칭입니다. 그만큼 남쪽을 주무대로 삼았던 왕조들은 거진 난징을 수도로 했습니다. 원래 명칭은 금릉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원을 통일했던 진시황이 이 지역에 도달했을 때, 제왕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여 소나무를 빽빽이 심어 왕기를 억누르고, 이름도 말릉으로 바뀌어서 삼국시대까지 그 명칭으로 불렀습니다.
3세기 초 손권이 오나라(손오)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올라 이후 6조(六朝)의 도읍이 되는 기반을 닦게 됩니다. 원래 오나라의 수도는 회계(會稽: 현재 절강성 소흥시)였는데 자치통감에 따르면 손권의 중신 장굉이 말릉이 도읍으로 적합한 땅이라 하여 권하였고 유비가 동쪽을 지나면서 손권에게 이곳으로 거주하라고 권유하여 212년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명칭도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의 건업(建業)으로 변경하죠.
내내 건업이 수도였던 건 아니고, 형주 공방전 직후와 손호 때인 265년 - 267년 두 차례에 걸쳐 잠깐 무창(지금의 무한시 내의 무창과는 다른 곳으로, 지금의 어청시)에 천도했지만 곧 건업으로 돌아왔습니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건업 서북쪽 경계에 구덩이가 있었는데 오나라 사람들은 다 시황제의 일화를 오나라 창건을 예언한 일화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 뒤 오나라를 멸하고 진나라(서진)가 삼국을 통일했으나, 이후 진나라는 팔왕의 난으로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결국 흉노 출신의 유연(劉淵)이 세운 한(漢)나라, 곧 전조에 의해 수도 낙양이 함락당하고 중국 북부를 빼앗겼다는 소식(영가의 난)이 건업에 있던 낭야왕 사마예(司馬睿-동진(東晉)의 초대 황제)에게 전해진 직후 휘하 심복들과 호족들의 뜻을 모아 그가 건업에서 즉위합니다. 이 시기부터 훗날 동진으로 분류하게 되죠. 원제(元帝-사마예)는 서진의 마지막 황제였던 민제(愍帝) 사마 업(司馬鄴)의 휘(이름)인 업(鄴)이 건업(建業)의 업과 음이 같다해서 이를 피하기 위해 건강(建康)이란 지명으로 고쳤습니다.
이후 6조시대 남조의 수도로서 계속 번성하였고, 이후 명나라의 초기 수도가 잠시 되었고, 청나라 이후까지 계속 번영합니다. 근대화 시기에 들어서 태평천국 운동,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대학살 등 역사의 부침을 겪다가 현재는 경제적 위상을 상하이에 내준 상황이지만 남아 있는 역사의 향기는 도시 전체에 퍼져있습니다.
비록 현재는 상하이에 밀렸지만 인구도 900만에 육박하는 대도시이고, 대만의 명목상의 수도도 난징일 정도로 상징성이 있습니다. 물론 분지 지형이고, 장강이 지나가는 지역이라 충칭, 우한과 함께 중국3대 화로라 불릴 만큼 아주 덥기로도 유명하죠. 그리고 중국의 몇 안 되는 일류대학이자 중국의 아이비리그라 불리는 구교 연맹(칭화, 베이징, 저장, 푸단, 상하이 교통, 시안 교통, 중국 기술, 하얼빈 이공)중 하나인 난징대학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에 본격적으로 난징의 명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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