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고향이 위치한 산시 성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허베이 지역의 다른 성과 달리 유목민과 농경민의 경계선에 위치해 산시 성만의 독특한 문화가 살아있는 동네입니다. 보통 산서 고원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태항산맥을 비롯한 3000미터의 높은 산들이 많아 다른 성과의 물물교환이 적었다고 합니다. 북악 헝산 불교의 성지 문수보살이 있다는 오대산(우타이산)등 명산이 많고, 이 지역이 참고로 중국 석탄 생산의 삼분의 일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지역이 고립되어 있지만 이 지역을 중심으로 당나라등 수많은 왕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으며 특히 선비족을 비롯한 이민족 왕조들이 중원으로 진출하기 전 이 지역에 도읍을 삼아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북쪽의 다통을 가면 선비족 왕조인 북위의 흔적들을 살펴볼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가장 많은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사라던가 성도인 타이위안 근교에 있는 진사는 천년이 넘은 목조건축물입니다.
이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인 만큼 농작물이 그렇게 잘 자라지는 않았지만 식초와 면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산서의 식초는 산시 성 사람들에 일상에서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라오 천추(노진초) 영화루가 제일 유명하고, 각종 요리에 필수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기 전 찻잔에 부어 물에 타서 먹고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산서성은 중국 8대 명주의 하나인 분주(펀주)로 유명합니다. 두목의 시에 나왔던 행화촌에서 생산되는 청향형(분향형)-농향형과 약간 차이가 있음 바이 주로 남북조 시대 황제가 마셨다는 사서의 기록이 있을 정도로 1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또한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는 축하연으로 마오타이와 함께 분주를 넣고 마셨다고 하지요.
하지만 산서성의 제일 명물은 뭐니 해도 도삭면이 아닐까 합니다. 중국 산시 성(山西省)의 연평균 강수량은 600mm 이하. 강수량이 적기에 이 지역에서는 쌀농사보다는 밀, 수수 농사를 많이 지었고 이런 밀과 수수를 이용한 국수 문화가 빨리 발달했다고 합니다. 또한, 산시 성은 중국의 최대 석탄 매장 지역으로 풍부한 석탄을 이용해서 뜨거운 불을 사용할 수 있었던 곳이었답니다. 라면을 뜨거운 불에 끓이면 좀 더 맛있는 것처럼 뜨거운 석탄불에 끓여낸 국수 맛에 산시 성 중국인들은 일찍이 반해버린 거지요.
산시 성에는 국수를 만드는 면의 재료, 국수 면발을 면발을 잘라내는 도구의 종류, 국수에 들어가는 소스, 이 소스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국수 종류가 400여 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어깨나 손에 반죽을 올리고 재빠르게 면발을 잘라내는 도삭면(刀削面, 따오샤오미엔)이나 면발을 길게 한 가닥으로 뽑아내는 일근면(一根面, 이 꺼미엔) 등 산시 성을 대표하는 면 요리는 면을 뽑아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공연입니다.
하지만 삼국지에 한정되서 산시 성의 제일 명물은 뭐니 해도 관우죠. 예로부터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진상(晉商), 산시 상인들은 신용을 으뜸으로 여겼는데, 삼국지의 관우가 중국에서 재물신으로 숭상받는 것도 이들 덕분입니다. 산시 상인들은 관우가 신의, 의리와 충실함을 대변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관우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삼았고 이후 이들이 전 중국에 퍼져 장사하면서 관우는 상인들의 재물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한다. 정작 실제 관우의 생애 자체는 부귀영화를 마다하는 등 장사꾼이랑은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듯해서 한국인들은 관우가 중국에서 재물신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는데, 관우를 숭상한 관우 고향 지역 출신 상인들이 중국 전국에서 활동하면서 그렇게 퍼진 것입니다. 사원의 관우상을 보면 보통 오른손에는 청룡언월도, 왼손에는 은자를 들고 있습니다. 진상은 금융업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해 중국 최초의 표호 일승 창이 산시 핑야오에 있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핑야오 고대도시는 산시의 자랑입니다.
산시성의 중심인 타이위안에서 300킬로 떨어진 관우의 고향 원청시에 가면 셰저우(해주) 관제묘가 있습니다. 관우의 3대 관제묘 중 하나로 몸은 당 양 머리는 낙양 얼은 이곳 고향인 해주에 있다고 합니다. 해주 관제묘는 수 왕조 시기 처음 지어진 뒤 송, 명, 청 대까지 이어지며 확장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해주 관제묘는 크게 볼 때 전전과 후궁으로 구분되는 등 그 구조가 중국 왕조의 궁궐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제 후궁 구역으로 넘어가면 해주관제묘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춘추루에 다다르게 됩니다. 관우의 침궁으로 3층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이하게 1층 건물보다 2층 건물의 넓이가 길어 얼핏 공중에 떠 있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느낌이지요. 내부에는 관우가 생전 애독했다던 춘추 전문이 세겨져 있고, 복층 구조로 되어이 있어 2층으로 올라가면 춘추를 들고 침대에 걸터앉은 관우상이 있습니다. 관우의 실제 모습과 가장 가깝다고 하는데 저는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관우의 도시 운성은 소금으로 유명합니다. 내륙도시인 운성에서 소금으로 유명하게 된 계기는 소금이 나는 호수 염호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죠. 춘추(春秋, 기원전 770~403) 시대에는 운성을 염씨지성(盐氏之城)이라고 불렀을 만큼 운성과 소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운성의 염호는 세계 3대 황산나트륨형 내륙 염호의 하나로 염분의 함유량이 중동의 사해(死海)와 비슷해 사람들의 몸이 둥둥 뜰 정도이며 이에 중국의 사해라고 불립니다. 염호가 탄생한 것은 신생대 제3기 히말라야 산맥의 조산 운동 시기로 약 5,000만 년 정도 되었습니다.
염호의 길이는 약 30km에 너비는 3~5km이며 호수면의 해발고도는 324.5m, 최고 수심은 약 6m로 총 면적은 132㎢이다. 염호가 형성된 것은 신생대 제4기(약 200만 년 전부터 현재)로 조산 운동의 영향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염호를 개발해 이용한 것은 4,000년도 전에 시작되었으며 염호와 관련해 순임금이 이곳을 지날 때 하얀 꼿이 만발한 것처럼 호수에 소금이 있는 것을 보고 기뻐서 손수 오현금(五絃琴)을 타며 남풍가(南風歌)를 불렀다고 합니다.
당시 소금은 국가 전매 사업이었고, 악덕 관리들의 수탈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19세의 관우는 악덕 관리를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관리들은 본보기로 삼기 위해 관씨 성을 가진 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관씨들은 다 도망갔지만 관우의 부모님은 너무 연로했고, 아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 웠던 나머지 집 앞 우물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염호가 내려다 보이는 창핑이란 마을에 관제묘가 세워져 있고, 옛 우물엔 관우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조택 탑이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황하강 제일의 폭포 후커우 폭포도 볼 수 있으니 함께 돌아보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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