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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민의 삼국지

삼국지 도시 소개(10)-우한(武汉)

최근 우한이 정말 유명해졌는데요. 이 우한이 삼국지 역사에서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로 적벽대전의 현장이 우한에서 멀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한때는 강하 군의 일부로서 손권, 손호 등 오나라의 황제들이 한때 수도로 삼기도 했었습니다. 최근에 안 좋은 일로 매스컴에 오르긴 했지만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장강 한복판에 있는 우한에 대해 본격적으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한수와 장강이 우한에 이르러 합류한다. 강을 경계로 우한은 한커우, 한양, 우창으로 나누어진다.

중국은 땅넓이도 크고 인구도 많아서 떠오르는 여러 대도시가 많을 텐데요. 우한은 그중에서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입니다. 베이징과 광저우 그리고 충칭과 상하이로 이어지는 중국 경제의 십자축의 교차점에 있는 도시라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고, 특히 북쪽에선 양번쪽에서 오는 한수와 남쪽에서 올라오는 장강이 만나는 곳이 우한 한복판이라 수륙교통에서 중요한 지점입니다. 인구가 1000만이 넘는 메가 시티지요.

중국의 중요한 물류 요충지 우한 남,북 동,서축의 중간 지점에 있다

철로, 도로,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장강 물류의 중심인 내륙 항구이고, 우한 톈허 국제공항은 중국 국내선 항공의 허브공항이기도 하기 때문에, 육해공 모두의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리하여 종종 "중국의 시카고"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중국 전 지역으로 가는 교통이 모두 모인다. 애초 중국 대륙의 정 중앙부이기 때문에 교통요지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런 지리적 입지 때문에 붙은 이 도시의 별명이 "아홉 성으로 통하는 거리"라는 뜻의 구성 통구(九省通衢). [ 한국으로 따지면 대전광역시와 매우 유사한 셈. 많은 연구소 또한 대전과 흡사하다!!

중국의 대표 허브공항 우한 톈허 국제공항
우한 시내의 거대한 고층빌딩 들

우한은 원래 장강과 한수를 경계로 하여 도시를 우창, 한커우, 한양 등 3개 지역으로 갈라 놓았는데, 예로부터 이 3개 지역을 가리켜 우한 3진이라 불렀습니다. 가장 긴 역사를 간직한 우창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줄곧 우한의 정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송대부터 군사 요충지로 중시되었던 한커우 지역은 1858년 텐진 조약으로 열강의 조차지가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우한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에 세운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다른 두 지역에 비해 발전이 더뎠던 한양 지역은 19세기부터 공업 제대로 발돋움하여 우한을 화중 지방 최대의 공업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개성이 다른 3개 도시는 1926년에 비로소 통합되면서 우창, 한커우의 이름을 따서 우한이라 지어진거지요. 지금도 우한에서 가장 큰 역 이름이 한커우 역이고 우창 역이란 명칭도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후쿠오카도 이와 비슷하게 생겨났지요.

 

잠시 중국 역사에서 변두리로 물러났던 우한은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다시 한 번 중국사에서 굵직한 사건이 발생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 청나라가 아편전쟁에 패배하게 되고, 서양세력에 의해 홍콩을 할양하고 주요 항구들을 개항했다고 알려졌는데, 우한이 내륙지 방임에도 불구하고, 1858년 텐진 조약으로 인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조계지가 설치되었습니다. 우한을 지나가는 장강이 유량이 충분해 큰 상선이 바다에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 항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시였습니다.

 

한편 우창은 신해혁명의 진원지로 청나라 만주족 황조의 멸망에 결정타를 날린 곳이기도 하다. 1911년 이 도시의 전신인 우창에서 일어난 우창 봉기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봉기의 이유는 청 황실이 철도 국유화를 감행하려 하자 보로운동 즉 철로를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것이 만주족을 축출하고 한족을 부흥시키자는 멸만흥한으로 번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던 우한이라 볼거리도 무척 풍부합니다.

훌륭한 우한의 입지조건으로 인해 수많은 서양열강들이 우한을 조계지로 삼았다.
우한의 대표역인 한커우역

지겨운 평원 동부 양쯔강과 한수이의 합류 지점에 위치해있습니다. 북부와 중앙은 낮고 평평하며 남부는 구릉 지역으로 창 강과 한수이가 도시를 통과합니다. 도시의 고도는 해발 37m에 불과하고, 크고 작은 호수가 200여 개나 되어 전체 면적의 1/4 이 호수나 강인 호수도시입니다. 평소에 흐린 날이 많으며 중국 다른 지방보다 호흡기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숫자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습하기도 하면서 열섬현상이 심한 도시라 중국 3대 찜통 중하나라고 합니다.

 

우한에 가시면 장강을 넘어 먼저 무창지역으로 가서 우한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황학루를 먼저 가보셔야 합니다. 난창의 등왕각, 웨양의 악양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불리고 있고, 높이가 55미터의 5층 누각으로 거대한 규모의 위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는 삼국시대에 오나라 왕 손권이 촉나라와의 전쟁을 대비해서 세운 망루였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손권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초천극 목이란 현판이 있습니다. 초나라의 하늘을 끝까지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3층 28미터 높이로 세워졌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전쟁과 화재에 7차례나 소실되고 중건되기를 반복하면서, 군사들이 망을 보던 장소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관망하는 누각으로 변했습니다.

손권이 건설했다고 전해지는 황학루

당나라와 송나라때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찾아와 황허루를 예찬하는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최호가 쓴 시 <황허루>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이백도 그의 작품을 보고 더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며 붓을 내려놓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지금 현재는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고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지만 4,5층에 올라 바라보는 전망이 끝내줍니다. 누런 빛의 창강과 푸른빛의 한 수가 만나는 풍경과 장강 최초의 대교인 장강 대교의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입장료가 좀 비싸지만 날씨가 좋을 때 올라가 보길 바랍니다.

우한의 한커우와 우창지역을 이어주는 장강대교

그리고 우한이 후베이성의 성도인 만큼 후베이성 박물관은 정말 남다른 볼 거리가 있어 가볼만합니다. 우선 월왕 구천 검으로 알려진 게 그것인데 우리에게 와신상담으로 알려진 오나라 부차의 칼과 월나라 구천의 검입니다. 춘추시대 말기에 만들어진 검이 전혀 녹슬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고, 담금질하면서 생겨난 자국까지 선명하다. 그리고 증나라 통치자 을에서 발견된 부장품 중에 65건의 편종이 하이라이트로 꼽힙니다. 편종은 크기가 서로 다른 청동 종들을 나무틀에 매달아 연주하는 악기로 음역대가 매우 넓고, 중후한 음색에서 청아한 음색까지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어 고대부터 궁중 음악 연주에 이용되었습니다. 편종의 복제품을 이용해 하루 4번 연주회를 한다고 합니다. 중국 전통음악부터 베토밴의 환희까지 5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동호 자락에 위치한 거대한 후베이성
후베이성 박물관의 명물 편종, 복제품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월왕 구천의 검이라고 전해지는 검

수많은 호수중에 우한의 동호는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손꼽힙니다. 우한의 총면적의 4분의 1을 호수와 강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동호는 가장 규모가 크고 항저우의 서호보다 6배의 넓이를 자랑합니다. 각종 풍경구의 볼거리는 물론 산책하기도 좋고 바로 옆의 박물관과 함께 연계해서 돌아보가 좋습니다.

 

우한이 예전 조계지로 번성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한커우지역에 가면 장한루 보행가가 있어서 상하이의 와이탄 느낌을 조금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고전주의 등 다채로운 양식의 서양풍 건물들을 볼 수 있죠. 최근에 이런 거리를 본떠서 추허한제와 광구 광장 등 여러 스폿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여기가 원조라는 점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이색적인 명소를 하나 더 추천하자면 서양식의 건축물 형상에 미얀마 양식이 섞인 고덕 사라는 불교 사원이 있습니다.

기묘한 양식의 불교사원 고덕사
우한의 옛 조계지 지역 장한루 보행가

그리고 우한지역의 요리는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에서도 소개된 바 있고, 고추를 많이 사용해 매콤한 맛이 주를 이뤄서 우리 입맛에도 잘 맞습니다. 황허루에서 도보 10분 정도 걸어가면 후부 샹이라고 불리는 먹자골목이 있습니다. 우한의 대표적인 면요리는 열간면이라 하는 매콤한 비빔국수입니다. 중국 5대면 요리 중 하나로 우한은 물론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으며 심지어 컵라면으로도 쉽게 맛볼 수 있습니다. 땅콩소스와 참깨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고추기름이 들어간 맛이라 고소함과 매콤함과 그리고 간장의 짭조름한 맛, 야채의 상큼한 맛이 함께 올라오기에 단조로운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한 끼 식사를 한 느낌이 듭니다.

우한의 명물 열간면

 

사천의 단단면과 상당히 차이가 나는 음식이므로 꼭 드셔보시길 바랍니다. 적벽대전이 일어났었던 도시 우한은 정사의 기록에 의하면 역병에 의해 조조 군이 패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조 군은 북방 출신이 많았는데 고온다습한 형주의 기후와 맞지 않아 풍토병이나 전염병에 취약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적벽대전이 11월에 발생했는데, 그렇게 더운 날씨가 아니었을 텐데 역병이 발생했다는 점이죠.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