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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민의 삼국지

삼국지 도시 소개(12)-형주(荆州)

이번에는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도시 징저우, 즉 형주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장강 북쪽을 따라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운하를 통해 동쪽의 한수이(한강)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쪽으로 150km 가면 나오는 샹양(양양)과 함께 과거 형주의 중심지였으며, 삼국지의 중요한 무대 중 하나였던 강릉이 관할구역 내에 위치합니다. 도시의 현재 인구는 580만 명입니다. 예전 강릉이란 명칭답게 우리나라의 강릉시와 자매도시이기도 합니다.

삼국의 중심에 있어서 늘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형주지역

형주 고성으로 유명하지만 최근에 한 동상으로 화제가 되었죠. 세계에서 가장 큰 관우상을 제작했는데, 여기에 럭스틸 25t이 쓰였습니다. 이 관우 상의 높이는 빌딩 20층 높이와 맞먹는 58m이고 무게는 136t에 달합니다. 투자비만 2600억 원이 들어 중국 내에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관우상 중 동국제강의 럭스틸이 쓰인 부분은 관우가 타고 있는 거대한 배 부분입니다. 면적만 총 7200㎡(2000평)에 달하는 이 배는 원목 질감을 그대로 살린 럭스틸로 장식됐지요. 완공된 이후 관람객들이 실제 나무로 관우 선을 만들었다고 착각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 관우상을 디자인한 사람은 중국 유명 예술가이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를 디자인한 한메이린(韓美林)입니다.

형주의 거대한 관우동상

최근에 중국정부로부터 주변 경관과 조화가 안 맞고 시의 역사적 가치를 훼손시켰다는 지적을 받아 이전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용이 수백억에 달해 형주시의 애물단지가 되고 있지요. 징저우 성은 사면이 물로 된 해자로 둘러 쌓여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로가 정, 직사각형의 형태가 아니라 수로를 따라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되어있지요. 즉 이런 독특함으로 인해 성을 공략하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성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해자는 수로를 통해 장강과 이어져 있어 물자를 공급받기도 쉬웠습니다.

일명 수성이라 불리는 형주성의 전경
형주성은 복잡한 구조로 인해 적이 함락시키기 어려웠다.

‘중원의 배꼽’ 이라고도 불리는 징저우는 총 120회로 구성된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중 무려 72회나 등장합니다. 형주 고성은 동서 3.75킬로 남북 1.2킬로 성벽 둘레가 10.8킬로를 자랑하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성곽입니다. 주로 동문인 인빈 문으로 성문을 들어오는데, 귀빈을 맞이한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고, 정동 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정동문이라고도 불립니다. 성문에 오르면 청룡언월도 문루 앞에 꽂혀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징저우 성을 관우가 축조했기 때문에 징저우 인들의 관우 숭배심이 비교적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누각을 나와 성문을 걷다보면 밖으로 넓이가 대략 20미터 정도 돼 보이는 해자가 흐르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아침에 나가면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조용히 성곽을 감싸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지요. 바깥의 해자, 중간의 벽돌 성, 안쪽의 토성 삼중 구조로 지어져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라 불렸었죠. 항상 외부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던 형주성이지만 그래도 이곳 백성들이 관우가 관할하던 10년간 관우의 어진 통치 덕분에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했다고 전해지죠.

관우가 다스렸던 관저터에 세워진 형주의 관제묘
명나라의 개혁가이자 재상인 장거정의 고택도 형주에 위치해 있다.

관우가 다스리던 곳인만큼 원래 형주성 내부에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 관제묘가 6곳이나 위치해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관우의 관저가 있던 터에 만든 관제묘 한 군데만 남아 있지요. 이곳 관제묘에서는 역시나 삼국지 덕후인 건륭제께서 친히 방문하셔서 택안남기 (관우의 은혜가 남쪽 지역 곳곳에 충만하니 남쪽 사람들은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관제묘 뒤편에 위치한 징저우 중심 병원에서도 징저우 사람들의 관우 숭배 발자취를 찾을 수 있습니다. 화타가 관우의 독화살 상처를 치료했다는 삼국지연의 일화를 그대로 재현한 관우와 화타 조각상입니다. 관우가 번성 공략 당시 오른팔에 독화살을 맞아 당대 최고 의사 화타가 칼로 살을 가르고 뼈를 긁어내는 대수술을 했으나 관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둑을 두었다는 일화다. 바둑판 앞에 관우가 오른팔을 걷어붙이고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동상으로 재현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적은 없습니다. 화타는 208년에 죽었죠.

형주고성의 야경